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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바깥으로 향할 때 - 3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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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2 05:47 조회 46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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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바깥으로 향할 때 - 35







“없어.”



의외로 딱 잘라 단언하는 듯한 성진의 말에 미선은 살짝 실망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에에, 거짓말.”



“거짓말 아냐. 어제도 비슷한 물음에 대답했을 텐데? 뭐 네 말마따나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정돈 있는 거야 사실이지만, 그게 좋아하는 감정인지 뭔지는 애매해.”



스스로도 그럴 듯한 결론을 내었다고 생각하는 성진. 하지만 미선은 선배를 빤히 바라보았고, 성진은 그 시선이 납득한 시선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다잡았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미선은 눈을 똑바로 뜨고 그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미소는 여전히 짓고 있었지만 강경한 분위기.



“선배. 한가지 알려드릴까요?”



“뭐… 를 말이야?”



“여자한테는 남자한텐 없는 특별한 센서를 가지고 있죠. 남자는 여자의 외모에 많이 홀려서 그것을 알아채기 어렵지만 여자는 남자와 한번 포옹하거나, 키스하거나, 혹은 그 이상의 깊은 관계를 가졌을 때 그 남자의 현재 상태를 상당부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요. 그가 자신을 좋아하는가, 그가 바람을 피우고 있는가, 단순히 육체적인 관계만 원하고 있는가. 혹은…….”



미선은 손가락을 들어 성진의 가슴을 콕하고 찔렀다. 성진은 마치 뾰족한 무엇에라도 찔린 것처럼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미선은 삐질삐질하는 선배가 귀여워보였는지 킥하고 웃고는 늘어뜨렸던 말을 붙여 넣듯 이어갔다.



“선배처럼 다른 여자의 생각에 사로잡혀서 마음이 불안정한가.”



“보기와는 다르게 경험이 풍부하십니다, 미선 양?”



나름대로 반박한답시고 맞받아친 성진의 말이었지만 미선은 볼을 살짝 부풀리며 입술을 내밀었을 뿐이었다.



“제가 경험이 풍부한 게 아니라 선배가 너무 어설픈 거에요. 선수라면 여자의 그런 센서도 감지하지 못하게 자신을 철저히 스위칭하죠. 그런데 성진 선배는 그렇지 못해요. 여자 경험이 적지 않은 건 사실일지 모르나 본성은 자신을 속이지 못한달까요.”



그녀의 시선이 슬며시 성진 옆을 비켜가며 암흑 속의 밤공기로 향하였다.



“이런 표현이 어떨진 모르겠지만 선배는 자신을 힘들게 하는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어요. 그래서 여자가 모르는 척해줘도 마음 놓고 바람을 피우지 못하죠. 뭐 저야 그런 선배의 모습에 이끌렸던 것도 같지만….”



밤공기가 더욱 차가위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성진은 뺨에 갖다 댔던 자신의 손가락을 슬며시 재킷 주머니속에 다시 넣었다. 문득 그는 첫눈이 내리면 이 상황에서 꽤나 로맨틱한 분위기가 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고, 미선은 잠시라고 하기엔 조금 긴 시간이 지나고서야 본론을 얘기했다.



“저는 선배가 행해주신 어제의 일로 충분해요. 아니, 만족해요. 저 또한 사랑받을 수 있는 여자란 걸 확인했으니까요. 저는 이것을 계기로 더욱 성장할 거에요. 물론 선배가 지금까지처럼 집까지 바래다주는 건 여전할 테고 앞으로 더 좋아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겠죠. 그럼 저는 아마 많이 힘들어지겠지만… 전 그것을 원하겠죠.”



“힘들어도 원하면 그렇게 해. 그것이 사랑이니까.”



“하지만 선배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아도 돼요.”



성진은 하마터면 군데군데 피로 물들어버린 손을 주머니에서 빼어서 미선의 어깨를 붙잡을 뻔했다. 그러나 그녀가 동요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에 간신히 그 행동을 제지하였다. 대신 몸을 반쯤 돌려고는 고개를 들어 허공을 향해 긴 한숨 같은 숨결을 내뿜어보았다. 아직 좀 이른 때이기도 하지만 정말로 눈이라도 한바탕 내려오면 어울리겠군.



“……지나친 생각이군. 채미선. 난 널 이성적으로 좋아해본 적은 없어. 그리고 설령 그렇다고 해도 내가 고작 너 때문에 힘들어할 것 같냐? 넌 이 선배를 따라오려면 아직 멀었다. 좀 더 나로 하여금 널 좋아하도록 재주껏 해보도록 해.”



하지만 미선은 미소 띤 얼굴 그대로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성진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똑바로 마주보았다.



“네 맘대로 해보라니깐?”



“참 가소로운 후배라고 생각하셔도 상관없어요. 저는 이제 선배의 갈등 속에서 한걸음 물러설 거에요. 물론 지워지지는 않겠지만.”



‘지워지지는 않는다’에서 성진은 미선이 포기하지는 않을 것임을 짐작하고는 이쯤에서 말싸움 아닌 말싸움을 끝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성진은 복잡다단하게 얽혀져 나오는 여자의 속마음 표현을 어느 정도 감지해낼 정도의 재주는 있었고, 그래서 그것이 상당히 미적지근한 결론임을 알아챘다. 그는 머릿속 한구석에 떠오르는 미선의 말을 상기시켰다.



“설렘이란 선물상자를 열어보았을 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됨으로써 받는 상처가 두렵나?”



그러나 미선은 여전히 미소를 지우지 않는 얼굴로 조용히 눈을 감고는 긍정인지 부정인지 모를 고개의 주억거림으로 돌렸다. 그리곤 대문 앞까지 걸어가서 성진을 돌아보곤 화사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보였다. 성진은 그녀가 문의 손잡이를 붙잡아 열고 들어가 완전히 집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그쪽을 바라보며 서있을 뿐이었다. 그녀가 선물해준 목도리를 목에 두른 채, 끝자락을 만지작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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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오후임을 강조하기라도 하듯 해는 중천에 높이 떠서 화창함을 발산하고 있었다. 겨울로 접어드는 쌀쌀한 날씨도 그 햇살의 존재에 잠시 움찔하여 물러선 듯하다. 그리고 모처럼 활기찬 분위기를 띠는 캠퍼스에서 조금 동떨어진 한 공터에는 잠시의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퍼억-!



동혁은 그 퉁퉁하고 큰 체구에 걸맞도록 자욱한 먼지를 흩뿌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주먹이 날아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머리를 한 손을 붙잡은 채 고개를 휘휘 내저어보았고, 성진은 그런 그를 내려다보며 딱딱한 목소리로 명령하듯 말했다.



“일어나.”



동혁은 비척비척 일어섰고 성진은 그가 제대로 다리를 뻗을 만큼 일어서기도 전에 한번 더 그의 안면을 후려쳤다. 동혁은 이번엔 고개가 완전히 옆으로 꺾이며 바닥에 볼품없이 쓰러졌다. 그는 시큰거리는 볼을 감싸쥐었고 입안은 터진 듯 붉은 피가 입가로 주륵 새어나왔다.



“일어나.”



성진은 똑같으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중압감으로 한결같이 말했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는 후배 규한이 동혁의 안경을 손에 든 채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꽤나 친절하게도 성진은 동혁에게 미리 안경을 벗도록 지시했고, 덕분에 얻어터지면서도 비싼 안경에 손상이 가는 희생까진 도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혁은 현재 그런 성진의 배려(?)에 감사할 생각 따윈 들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혼미해짐을 느꼈다. 성진의 주먹은 날카로운 주인의 성향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매서웠고 동혁은 지금 당장의 아픔을 감당하기만도 여의치 않아보였다.



몇 차례의 타격이 더 이어졌고, 쓰러진 동혁이 일어나는 게 지체되자 성진은 발로 사정없이 그의 배를 걷어찼다. 동혁은 손을 뻗어 바닥을 지탱해서 간신히 굴러가는 걸 방지했지만 사실 그런 노력은 별 쓸모가 없었다. 성진이 거의 곧바로 동혁의 멱살을 쥐어서 강제로 몸을 일으켜세웠기 때문이다.



“니가 사람이냐? 어? 정상인한테도 그럴 수 없는 걸 하물며 다쳤으니 잘 봐주라고 한 애한테 그딴 짓을 해? 말해봐 이 새끼야!”



그 큰 몸을 한 손으로 일으켜 세우느라 성진의 팔이 무리함을 호소하듯 경련을 일으켰지만, 그는 팔이 꺾여도 상관없다는 듯 동혁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동혁은 증오심에 이글거리는 그의 눈을 피해 고개를 옆으로 돌렸고 성진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주먹을 내질렀다. 옆얼굴을 강타당한 동혁은 비척비척 뒤로 물러났고 건물 벽에 등을 기대며 반쯤 쓰러져 앉았다.



하지만 성진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는 벽에 기대여 물러서지도 못하는 동혁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짓밟듯이 발로 연이어 가격했다. 동혁의 옷은 온통 흙투성이가 되었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움츠린 몸은 거구에 어울리지 않게 비루했다. 성진은 쌓인 무언가를 풀어내기라도 하듯 소리지르며 동혁을 사정없이 내려찍었다.



“그래 놓고 전화로 뭐? 안 취해? 걔가 스스로 나가?”



파악-!



“아무 말 안 하고 있었으면, 내가 모를 줄 알았나?”



콰악-!



“아주 안에까지 제대로 다 해 놨더라? 너 대체 뒷일을 어떻게 감당할려고….”



그리고 성진이 한번 더 내려찍으려고 다리를 들어올렸을 때였다. 언제까지고 쓰러져 죽은 듯이 방어만 할 줄 알았던 동혁이 갑자기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났다. 성진은 이전까지 하던 행동을 완수하지 못하고 주춤하며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동혁은 꽤 큰 몸집만큼 키도 성진보다 약간 컸고, 그래서 급작스럽게 반전된 분위기마냥 시선에서 압도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성진이 자세를 바로잡는 짧은 틈에 동혁은 코와 입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을 생각도 않고 곧바로 말했다. 꼿꼿하게 선 자세 그대로.



“이제 그만 하지?”



“뭐…?”



“그만하라고. 강간에 대한 대가를 치뤄야한다면 성폭행 관련으로 경찰에 신고하든지 하면 될 거 아냐.”



성진은 잠시 기가 막혔다. 그는 한 손을 허리에 얹은 채로 동혁을 삐딱하게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너… 정말 내 친구 맞냐?”



하지만 동혁은 그의 말을 듣는지마는지 그제서야 손등으로 코와 입에 흐르는 피를 훔쳐내었다. 그리곤 자신의 손에 묻은 피를 훑어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먼 곳을 응시하는 듯한 그의 모습에 성진은 다시금 울컥해서 주먹을 들어올렸다.



“이 자식이…!”



그 때 얼마간 떨어져있던 규한이 달려와서 그런 그를 제지했다. 안경을 한 손에 들고 있느라 성진의 팔을 끌어내는 그의 제지는 어설프기 짝이없었지만 효과는 있었다. 한참을 두들겨팬 성진의 입장에서는 꽤 지쳐있었고, 그는 가뿐 숨을 몰아쉬며 규한과 함께 비척비척 뒤로 물러섰다.



“그만해요. 그만… 선배.”



“이거 놔! 저 자식 전혀 반성하는 기미가 없잖아?”



“네 녀석이 만족할만한 반성을 바라는 거겠지.”



다시 이쪽을 바라보며 입을 여는 동혁. 성진은 그런 그의 말에 금방이라도 재차 달려들듯한 동작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뭐…?”



“그녀의 미모에 빠진 거냐? 아니면 한 집에 살다보니 없던 정이라도 생긴 건가?”



“무슨 뜬금없는 소릴 하는 거야!”



“마치 그녀가 네 애인이라도 되는 양 행세하지 말라는 거다. 대체 네가 이렇게까지 나서는 이유가 뭔데? 네가 말한 그 친구라는 관계도 뒤엎을 정도의 정의감에 불타는 거냐? 단순한 보호자라며. 지금도 네가 보살펴줘야 할만큼 다쳤는지부터가 의문이 들지만.”



성진은 뭐라고 반박하려다 말문이 막혔다. 그녀의 복잡한 내면적 변화를 이 녀석에게 일일이 납득하도록 설명을 해야 하는 건가? 그러나 이미 언급하지 못한 부분도 있기 때문에 성진은 더 이상 그를 두들겨팰 당위성을 떠올리지 못했다. 성진은 뒤에서 제지하는 규한의 한쪽 팔을 뿌리치듯 털어내며 내뱉었다.



“궤변은 집어치워. 관계 없다면 아무 여자나 강간하는 걸 지켜만 봐야 한다는 거냐?”



“내가 맞을만한 행동을 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굳이 신고한다고 해도 할말 없다는 것도 알고. 그런데 너.”



성진은 동혁과 눈이 마주치는 게 왠지 꺼림칙해짐을 느꼈다.



“거울이나 좀 보고 얘기했음 좋겠군.”



성진은 결국 그에게서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돌렸고, 옆의 규한이 ‘성진 선배 지금 복수의 화신에 깃든 감정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표상으로 사진을 찍어두면 볼만할 것 같아요’라는 부연 설명이 담긴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도 외면했다.



약 몇 초 후, 동혁 역시 성진에게서 시선을 떼고는 그와는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건 성진에게 다른 방향으로 꽂아오는 화살과 같은 기분을 안겨주었다.



“혜진인 어떡할 거야?”



“걔는 또 왜.”



“몰라서 묻냐? 걔가 널 좋아하는 것은 비단 그때 첫만남 자리에서 참여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알아챌 정도인데. 요새 너희 둘이 얼마나 자주 붙어다니는지 정작 너 자신은 잘 모르나본데,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도 남아.”



“네가 퍼뜨린 건 아니고?”



동혁은 그런 성진의 반박은 부정할 가치조차 없다는 듯이 픽하고 웃었다. 성진은 불필요하게 말을 퍼뜨리고 다닐 계제가 되지 않는, 그의 합리적인 성격을 인지하고는 그쯤에서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리고 동혁은 그 물음은 완벽하게 무시한 채 거의 곧바로 말을 이어갔다. 어쩐지 주도권이 전환된 모습.



“설령 네가 그 선영인가 뭔가 하는 년하고도 사귀고 있다고 치자. 얄팍한 연애에 홀려서 툭하면 이 여자 저 여자 만나고 다니는, 우리 같은 이십 대 초반의 보편적인 시대의 눈물을 보는 것도 뭐 새삼스러운 건 아니니까. 네 진심은 어디에 있지? 이렇게 나를 쥐어팰 정도로 분노하게 만드는 그 선영인가? 그럼 혜진하고는 단순히 연애놀이를 하는 건가? 일종의 데이트메이트 이상의 감정은 없는 걸로? 혜진도 그걸 알고 인정하며 너와 만나고 있는 거냐?”



“…닥쳐! 네가 뭘 안다고 떠들어대?”



성진은 이번엔 규한이 제지할 틈도 주지 않고 단숨에 동혁 앞으로 달려와서 주먹을 쳐들었다. 하지만 동혁은 이번엔 눈을 감거나 방어 자세를 취하는 대신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고, 성진은 쳐든 주먹을 허공에 정지시킨 채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동혁의 말은 상당부분 그의 복잡한 내면을 구체화시키고 있었고, 그것을 부정하지 못하는 성진의 심경이 그로 하여금 상대방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억누르고 있었다.



“애인이라고 얘기하지도 못할 상대에 흔들려서 정신 없이 두들겨패고 있다니, 정말 친구 맞는지는 내 쪽에서 물어보고 싶을 정도군. 우리 사이가 이정도밖에 안 됐냐?”



“그래서 네 애인님인 윤지는 다른 여자를 겁탈한 후의 상황을 두눈으로 보고도 계속 너랑 사귀겠다고 했던 거냐? 참 대단하다.”



동혁도 그 말에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고 성진은 그런 그를 한동안 노려보다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규한 옆을 지나쳐 몇 발자국 걸어갔다. 문득 성진은 내리쬐는 햇살에 입고 있던 재킷이 후덥지근해지기라도 한 듯 거칠게 벗어제꼈다. 그는 재킷을 바닥에 힘껏 내동댕이쳤다. 파악-!



“제기랄!”



이어서 그는 뒤도 안 돌아보고 성큼성큼 그 공터를 걸어 떠나갔다. 남겨진 동혁과 규한은 제각기 무덤덤하고 근심 섞인 눈길로 그런 성진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떠나자 공터는 갑자기 쥐 죽은 듯 적막감이 감돌았고, 아련하게 들려오는 새의 지저귐속에서 규한은 문득 정신을 차린 듯 동혁에게 달려왔다. 그는 재빨리 가방속에서 휴대용 티슈를 꺼내어 동혁의 얼굴에 흐르는 피를 닦았다.



“괜찮아요, 선배?”



하지만 동혁은 그런 그의 손길을 본채만채 여전히 성진이 사라진 방향만 바라보았다. 아무렇게나 구겨진 채 남겨진 그의 재킷 쪽으로.



“답지 않군. 저 녀석 요새 왜 저리 흔들리는 거야?”



한편, 쌀쌀한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겉옷 바람으로 큰 보폭을 내딛으며 걸어가던 성진은 바지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신경질적으로 버튼을 누르며 연락처를 검색해나갔다. 적당한 상대가 보이자 그는 통화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귀에 갖다 댔다.



“뭐야, 성진이냐? 간만이네. 무슨 일인데?”



“어, 형. 아니, 별일은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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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된 넓은 실내에 놓인 대형 스크린, 교탁, 화이트보드 등은 대학의 고급 시설에 대한 표상을 드러내는 듯했고, 느지막한 오후 햇살이 그런 강의실 내부로 스며들고 있었다. 가지런하게 정렬된 책상들은 들이밀어진 의자와 함께 그 햇살을 반사시키며 윤기를 발한다. 사실 그 윤기를 발하는 데에 있어서 더 많은 햇살을 지원받을 수도 있겠지만 아쉽게도 수업이 없는 강의실 내부는 블라인드가 쳐져 있었고 그래서 상당부분 빛의 차단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물론 사람이 아주 없던 것은 아니다. 왼쪽 끝자리 맨 앞에는 한 여자가 앉아있었다. 그녀의 책상 위에는 넷북과 이런저런 문서들이 널려있는 것으로 보아 혼자 남아서 리포트 혹은 발표 과제를 정리하는 것으로 짐작될 것이다. 실제로 혜진은 이번 주말 강의에 발표 담당이었기에 그동안의 자료를 꼼꼼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녀는 방금 교수의 지적 사항을 잊어버리기 전에 즉석에서 수정하고 있었고, 그래서 과대표로부터 강의실 출입 카드도 인계 받은 상태였다.



넓고 조용한 강의실에서 혼자 작업하던 혜진은 문득 화창한 오후 날씨에 나른한 기분이라도 느끼는지 기지개를 쭉하고 폈다. 연한 블라우스가 반쯤 풀어헤쳐진 롱코트 밖으로 노출되며 그녀의 동그란 두 젖가슴 모양을 드러낸다. 짧은 스쿨룩치마 밑으로 뻗어진 두 다리를 꼬면서 그녀는 이 정도면 발표 자료가 얼추 완성됐다고 생각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허벅지 위에 얹은 한쪽 다리를 흔들거리며 하릴없이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그녀가 신고 있는 높은 굽의 롱부츠가 심심한 듯 다리의 까딱거림과 함께 흔들린다.



핸드폰에는 친구로부터 온 듯한 몇 개의 문자가 떠있었고 혜진은 모두 나중에 볼 것으로 넘겨두고는 하나의 사진을 로딩시켰다. 그것은 그냥 갑자기 보고 싶어진 누군가의 사진이었다. 혜진은 핸드폰 화면에 떠오른 성진의 모습, 즉 첫 관계를 가졌었던 모텔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는 어느 정도 기분이 충족됨을 느꼈다. 이쪽을 바라보며 싱긋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혜진도 살포시 미소지었다.



그러나 만족감이란 것은 늘상 다른 형태의 불만족을 불러오는 법. 한동안 성진의 사진을 바라보던 혜진은 문득 머릿속에 한가지 상상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은 가슴으로, 이어서 더 밑으로도 일종의 기묘한 감각을 불러일으켜왔다. 싫지는 않았지만 난처함을 자아내는 감각이었고, 혜진은 그 감각이 불만족에서 오는 허전함임을 깨닫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금 안정을 찾지 못하는 자신을 진정시킬 방법을 모색해갔다. 그리고 사실상 본능적으로 나온 감각인 만큼 본능적인 해결방법이 최선이었다.



혜진은 재빨리 일어서서 강의실을 한바퀴 돌며 앞쪽과 뒤쪽의 출입문을 잠그었다. 어차피 수업이 끝난 강의실이니 누가 온다고 해도 잠긴 문을 확인하곤 그냥 돌아갈 것이었다. 복도쪽 블라인드를 모두 내린 혜진은 자리로 돌아와 다시 앉았다. 오후 햇살은 늦가을의 계절임을 감안하면 꽤나 강렬했고 창가쪽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만으로도 충분한 포근함을 선사하고 있었다. 그 따사로움 속에서 혜진은 다시 핸드폰의 성진을 바라보며 재차 찾아든 불만족을 해결하기 시작했다.



혜진은 꼬아앉은 다리 그대로 치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허벅지가 훤히 드러날정도로 짧은 치마였는지라 그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팬티를 만지기엔 별 무리가 없었다. 혜진은 책상 위에 핸드폰을 열어놓은 채로 올려놓았고, 액정화면에 나타난 성진의 모습을 보며 살포시 미소지었다. 그의 날카로운 앞머리칼과 일견 차가운 듯하면서도 따스함이 어려있는 미소가 혜진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혜진은 자신도 모르게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성진 오빠….”



그 기묘한 감각은 은근하면서도 강력하게 혜진의 내면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팬티를 만지는 손가락에 점차적으로 힘을 실어서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부드러운 팬티의 천조각이 그녀의 손가락과 함께 보지의 균열 속으로 조금씩 밀려들어갔다. 다리 사이가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혜진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눈을 내리깔았다. 하지만 핸드폰 화면을 보는 그녀의 눈동자는 더욱 강렬하게 반짝여갔다.



팬티 위로 손을 더듬는 것만으로는 모자랐다. 그녀는 허전한 내면을 좀 더 만족스럽게 채우기라도 하듯 팬티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보다 직접적인 감각이 그녀를 반기었다. 혜진은 손가락에 전해지는 느낌만으로도 자신의 보지가 촉촉이 젖어오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미끌미끌한 액체가 손가락에 잦아들었고, 혜진은 가운데손가락을 조금씩 자신의 보지 속으로 집어넣어보았다. 손가락이 보짓살을 파고들어감에 따라 골반이 약간씩 떨리어왔다. 혜진은 그 기묘하고 야릇한 감각이 온몸에 퍼져나가기 시작함을 느끼고는 입을 살짝 벌리며 조그맣게 신음 비슷한 소리를 내었다.



“……읏….”



혜진은 가운데손가락을 더욱 깊게 넣었다. 짜릿한 감각이 몰려오며 흘러나오는 애액 또한 많아져 갔다. 혜진은 보지 않아도 자신의 팬티가 촉촉히 젖어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혜진은 그 행위를 멈출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녀는 수많은 비슷한 경험을 통해 한번 시작한 이상 자신을 제어할 수 없음을 깨닫고 있었다. 더군다나 평소에는 평범한 여대생의 연기를 하지만 그녀는 사실 성진에게도 그랬던 것처럼 웬만한 남자들을 휘어잡을 만큼 타고난 미모와 숙달된 기교를 갖고 있었다. 하물며 자위는 더 익숙했다.



혜진은 이번엔 검지손가락도 내어 자신의 보지 속으로 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앞서보다 좀 더 강하면서도 짙은 느낌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혜진은 다리를 옴찔옴찔 떨다가 결국 꼰 다리를 풀어내었다. 허벅지는 모은 채 롱부츠를 신은 두 종아리는 양쪽으로 벌린 상태로 앉아서 그녀는 몸을 약간 앞으로 굽혔다. 그리고는 보지 속으로 집어넣은 손가락을 넣었다뺐다 하며 몰려오는 쾌감에 점차 허덕이기 시작했다.



“아아…… 아….”



손가락이 보짓물을 가득 머금은 채 들락날락했고 혜진은 이젠 두 손가락도 미끈하게 드나들 정도로 자신의 보지가 젖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두 손가락을 보지 속 깊숙이 넣어보았다. 충족되는 기분마냥 더 큰 쾌감을 요구하는 성감대. 혜진은 어쩐지 쓴웃음이라도 짓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이제 보지 속에 넣은 손가락을 조금씩 휘저어갔다. 질척거리게 매끄러워진 질의 내부 곳곳이 그녀의 손가락에 자극되며 더욱 야릇한 쾌감을 전달한다.



“흣…….”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쑤시고 휘젓는 손가락은 주인의 명령에 충실하게 반응하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주인을 쾌감이란 속박으로 얽어매고 있었다. 혜진은 자신의 보지를 쑤셔대는 자신의 손가락에 어찌할 줄을 몰라서 두 다리를 벌렸다 오므렸다 하며 몸을 떨었다. 보지 속에서 두 손가락을 위아래로 벌려보았고, 그에 따라 급작스럽게 떠오르는 기분을 감당하지 못해 엉덩이를 살짝 들었다가 다시 앉으면서 책상 위로 몸을 숙였다. 눈앞에 핸드폰 액정화면이 다가오자 그녀는 뜨거운 숨결을 내뱉으며 그 안의 성진을 바라보곤 다시금 조그맣게 속삭이듯 말했다.



“좋아해… 성진… 오빠… 아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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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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